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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함께 부족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서 세력이 강한 부족장은 주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점차 권력을 강화하여 갔다.
우리의 조상으로 온 국민이 인식하고 있는 단군 왕검이 고려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고조선은 단군 왕검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다.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 세상르 이롭게 할 만했다.그래서 천부인(하늘이 준 증표)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불렀다.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그는 바람,비,구름을 다스리는 신하를 거느리고 곡식,형벌,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다스렸다.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호랑이는 참지 못했지만 곰은 잘 참아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다.여자가 된 곰은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분이 단군 왕검이다.단군왕검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였다.이 이야기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야기를 담은 일연의 삼국유사의 일화이다.
건국신화는 천지가 개벽한 후 음양이 생기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삼라만상이 발생하며 사람들을 통치할 사람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국가를 건설하고 다스린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군은 제정일치의 지배자로서 고조선의 성장과 함께 주변의 부족을 아우르고 그들의 조상을 하늘에 연결 시킨 것이다.
단군왕검 이야기는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농사를 중시하고 단군왕검처럼 제사와 정치를 한 손에 쥔 최고 지배자가 다스리는 것이 청동기 사회의 특징이다.
단군 숭배사상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민족 공동의 시조로 구체화 하였고 조선시대에 실존설로 대중화되어 세종 때 평양에 사당을 짓고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과 함께 모시고 국조(國祖)로 받들었다.
또한 구월산에는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삼성사(三聖祠)가 서고,강동에는 단군의 묘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후 조선말기부터 단군교(檀君敎)·대종교(大倧敎)가 생겨 단군이 종교적 대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종교에서 시행돈 10월3일의 개천절은 8·15 광복 후 국경일로 제정하여 단군의 개국과 옹익인간의 건국이념을 되새기고 있다.
단군의 건국에 관한 기록은 앞의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제왕운기》,《응제시주》,《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남》 등에 나타나고 있다.천신의 아들이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하는 단군 조선 건국의 기록은 우리나라의 건국과정의 역사적 사실과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고려,조선,근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