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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아관파천 명성왕후

처음나리다18 2020. 7. 4. 04:11

아관파천은 국가의 상징인 왕이 러시아 공사관 밀실로 유폐생활을 하러 간 것을 말하는데

민비(명성왕후)를 시해한 을미사변(1895)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 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나자 정국이 소란 해졌다.

러시아의 웨베르 공사는 공사관을 보호 한다는 구실로 수병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친러파인 이범진 등은 웨베르 공사와 공모하여 1896211일 새벽에 국왕과 세자를 여성용 교자에 숨겨 모시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 갔다.

왕을 일개 정권의 상징으로 밖에 보지 않는 당시의 정객들은 친일파나 친러파를 막론하고 모두 어떻게 하면 왕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서 정권을 잡아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왕의 아관파천은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정식으로 왕을 모실 사람이 없으므로 자연 지밀(至密) 상궁이 왕의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되었다.이때 지밀(至密) 상궁은 엄상궁으로서 그의 출신은 미천하였으나 궁중에 들어와 왕의 총애를 받았다.

엄상궁도 명성왕후가 생존했을 때에는 한때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으나 명성왕후가 피살된 후 부터는 왕비나 다름없이 위세를 부리면 왕을 좌우에서 모시게 되었다.

친러파인 이범진,이윤용,이완용 등은 엄상궁에게 은밀히 돈 4만냥을 뇌물로 주어 왕을 건청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모시게 하였던 것이다.

명성왕후가 살해된 후 왕의 심정은 불안하였고 일본 잔당들이 어느 때 또 나타나 자기에게 무슨 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왕의 심정을 꿰뚫어 본 엄상궁이 잠시 몸을 피하자는 제의를 하니 왕은 즉시 실행에 옮겨 건청문에서 신무문까지 걸어나와 러시아 공사관 지하 밀실로 들어갔던 것이다.아관파천은 밝은 곳을 버리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왕의 심사도 가련 하였다.

왕의 일행이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하자 대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친러파들이 왕을 옹호하여 들어가려 하자 러시아 공사는 왕과 세자만을 들여보내고 다른 사람들은 접근도 못하게 제지 하였으니 왕은 완전히 감금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관파천이후 왕을 배알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러시아 공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오직 통역 김홍륙만이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아관파천이후 정치는 하루아침에 친러파의 손으로 넘어가고 지금까지 정권을 잡았던 친일세력의 총리대신 김홍집과 상공대신 정병하는 역적의 죄명으로 경복궁 앞에서 군중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고 유길준, 권영진 등의 친일파는 일본으로 망명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친러 내각에는 이범진이 법무대신,안경수가 경무사가 되어 실권을 장학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아관파천이후 우리나라 내정 간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각부의 고문을 모두 러시아인으로 임명하고 러시아 무기가 수입되고 은행,러시아어 학교까지 설립되어 세상은 완전히 친러파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탁지부 고문인 알렉세프는 마치 재무부 장관처럼 이권을 농락하여 경인철도 부설권은 미국인 모어스에게,경의선은 프랑스 사람 그릴르에게 넘겨주고,함경도 광업권은 러시아 사람 니시첸스키에게,압록강 유역의 벌채권은 러시아의 푸리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평북의 운산 금광은 미국인에게 넘겨주고 강원도 금성군 당현의 금광권은 독일사람에게 넘겨주는 등 이권에 관여하여 막대한 소개료를 착복하였다.

우리 국민은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맹렬히 비난하였고 독립협회는 왕의 환궁과 이권양도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1897년 왕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국호를 제국 연호를 광무라 하고 왕을 황제라 칭하고 자주 국가임을 선포하였다.

대한제국 성립되었지만 집권층의 보수적 성향과 열강의 간섭으로 광무개혁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진보적 정치 개혁 운동을 탄압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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