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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탕평책 당쟁

처음나리다18 2020. 7. 18. 16:25

탕평책은 당쟁을 없애는 정책인데 탕평은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導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이라는 옛 글귀에서 따온말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치는 지극히 공평하고 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탕평책을 맨 처음 내놓은 사람은 장희빈과 인현왕후로 유명한 숙종이다.그러나 숙종 때는 탕평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탕평의 목적은 당파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의 권한과 권위를 되찾는 것이었다.

숙종이후의 영조는 탕평책을 강조하면서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웠고 뒤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도 당쟁을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했으나 상당히 당쟁을 줄이는 효과를 보았다.

당쟁의 근본원인은 관직 수는 정해져 있는데 비해 관직에 오르려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당쟁이 생기는 것이다.

관직에 오르려면 어느 당파든 인연을 맺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조선시대 관리는 후보 추천을 받은 사람을 골라 그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사람을 골라 뽑았다.

당쟁이 시작하면서 후보 추천을 할 때 자기 당파 사람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당파와 인연을 맺는 건 몹시 중요했다.

어느 당파가 세력을 쥐었는가는 시기에 따라 달라 광해군 때는 북인이 세력을 쥐었고 인조 때에는 서인이 막강한 세력을 휘둘렀고 숙종 때는 남인과 서인이 번갈아 세력을 쥐다가 최후의 승리는 서인으로 돌아 갔다.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고 영조 때는 노론이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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