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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조 화성행차도

처음나리다18 2020. 7. 19. 06:53

정조의 화성행차는 회갑을 맞은 어머니의 회갑 축하 잔치를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이 있는 화성에서 하기로 하였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 맺힌 영혼을 달래고 나아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노론들에게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를 하는 정조의 화성행차는 을묘년 1795년에 윤 29일부터 8일동안 벌어졌다.

행차에 참가한 사람은 1779명 말은 779필이었지만 화성 행차에 모두 참여한 인원은 무려 6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조의 화성행차는 숭례문을 빠져나와 지금의 서울역을 지나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 화성을 가기 위해서 한강에 배를 통하여 다리를 놓았다.

한강을 오가며 장사하는 배 36척을 동원하여 배와 배를 연결한 다음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다리를 만들었다.

오색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혜경궁이 탄 가마와 왕이 탄 말,그 앞뒤로 늘어선 수많은 관리들과 군사들이 천천히 배다리를 건너는 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도의 가장 백미는 배다리라고 한다.

행차는 무사히 한강은 건너 장승백이 고개를 시흥에 도착하여 새로 지은 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은 만안교를 건너 안양참(지금의 안양 전철역근처)을 지나 사근참 행궁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비를 맞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을 지나 남문인 팔달문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꺽으면 화성 행궁이 있다.

정조는 어머니를 행궁의 장락당이란 건물로 모신다음 저녁 수라를 들게 했다.

창덕궁에서 화성 행궁까지는 꼬박 63리의 정조의 화성행차도의 모습이다.

그런 다음 다음날부터 나흘 동안 화성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열었는데 화성근처에 사는 유생들과 무사들을 위해 과거시험이 열리고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참배도 있었다.

또한 왕의 참관아래 군사훈련이 밤과 낮에 두 번 열리고 혜경궁의 회갑 잔치에 이어서 화성에 사는 노인들 384명을 초청하여 양로연을 베풀고 홀아비,과부,고아,자식없는 노인,가난한 사람 들에게 쌀과 소금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215일 정조는 화성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과 직접 대화를 하며 백성들에게 두터운 믿음을 주며 왕의 권위를 탄탄히 다지는 시간을 가지며 8일간의 화성행차는 막을 내린다.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행차한 뒤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만들게 했다.‘의궤는 나라에서 행사나 의식을 치를 때 그 과정을 기록해 두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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