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지금의 경주 일대의 사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시작 되었다.사로국은 진한에 속해있던 12개 작은 나라 중에 하나였는데 어느날 사로국의 촌장이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상해서 가까이 가보니 자줏빛 커다란 알이 있었는데 그 알에서 어린아이가 나왔다고 아이의 탄생을 신기하게 여긴 사로국 사람들은 아이가 자라 열세 살이 되자 왕으로 받들었다고 하는데 아이가 태어난 알이 둥근 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성을 ‘박’이라고 하고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는데 이는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사로국도 백제나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차츰 크고 강한 나라로 커졌는데 503년 지증왕 때 나라 이름을 ‘신라’로 바꾸었다.그리고 지증왕 때 왕이라는 호..
고조선 다음으로 우리 역사에 나타난 여러 나라중에서 백두산에서 만주로 가는 흘러가는 송화강 주변에 넓은 평야에 세워진 나라가 부여이다.고조선이 멸망할 무렵 부여는 만주일대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부여는 목축이 발달한 나라로 높은 관리의 이름에 가축이름을 따 붙인 것으로 마(馬)가,우(牛)가,저(猪)가,구(狗)가가 있었는데 마가는 말,우가는 소,저가는 돼지,구가는 개를 뜻하는 한자이고 ‘가’는 귀한 사람,대인이라는 존칭어다.부여에는 음력12월이 되면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제천행사는 제사인 동시에 축제여서 정성껏 제사를 지낸 다음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밤새워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일을 제천행사라고 하는데 부여뿐 아니라 고구려,동예,삼한에..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함께 부족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출현하게 되었다.이들 중에서 세력이 강한 부족장은 주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점차 권력을 강화하여 갔다.우리의 조상으로 온 국민이 인식하고 있는 단군 왕검이 고려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고조선은 단군 왕검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다.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 세상르 이롭게 할 만했다.그래서 천부인(하늘이 준 증표)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불렀다.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그는 바람,비,구름을 다스리는 신하를 거느리고 곡식,형벌,선악 등 ..
불교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있는 위치는 서양의 카톨릭과 비슷하다.한국 불교의 전래는 삼국시대에 처음 들어와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약 천 년 동안 나라가 앞장서서 장려하는 종교로서 우리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구려는 소수림왕2년 372년 전진왕 부견이 ‘중’ 순도를 시켜 불경과 불상을 보내오자 왕은 사신을 보내어 희사하고 법률을 제정하여 공포하고 초문사,이불란사을 창건하였는 이것이 한국불교의 시초가 되었다.불교는 기원전 500년 경에 가비라의 왕족 석가족의 태자 싯달라가 생노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부타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오랫동안의 수도 끝에 깨달음을 얻어 이룩한 종교이다.그는 인간의 존재는 욕망을 근거로 하여 성립되었으며 욕망의 근원은 물심(物心)에 대한 애착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항일 독립운동의 독립군은 통일된 군대가 아니라 각각 작은 규모의 부대를 따로 만들어 활동하여서 부대이름도 달랐는데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의 두 부대는 청산리 전투에서 힘을 합쳐 일본군을 물리쳤다.특히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북로군정서보다 규모는 작지만 봉오동 전투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둔 용맹한 부대였다.1920년 6월 일본군이 봉오동 입구에 나타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봉오동은 만주 왕청현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인 마을 이었다.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군 그리고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이 봉오동에 모여서 총사령관을 홍범도를 대장으로 하여 산마루에 진을 치고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별안간 소나기가 쏟아지고 동시에 안개가 골짜기와 산기슭을 자욱하..
주리론을 바탕으로 하는 항일의병운동과 주기론을 바탕으로 북학파의 사상과 사회진화론,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문명개화론을 관련이 있는 애국계몽운동을 비교해 보자. 항일 의병운동은 을사조약 전부터 일어났다.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시해당하고 또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선포되자 의병운동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처음에 의병을 일으킨건 양반 유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성리학을 수호하고 사교를 배척하였다. 양반유생들은 부모에게 받은 것은 털 끝 하나라도 다쳐선 안된다는 성리학의 가르침 때문에 소중한 상투를 자르는건 곧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면서 단발을 강요하는 일본과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항일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의병운동이 활기를 띤 건 1907년 일본이 군대를 해산하는 명령을 내려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면..
조선시대 한양에는 시전이라고 하는 특별한 가게 들이 있었는데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직접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전에게 넘겨야 했다. 시전을 무시하고 직접 손님에게 물건을 팔면 ‘난전’이라 하여 시전상인에게 물건을 빼앗기고 벌을 받거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시전이 가진 이런 특별한 권리를 ‘금난전권“이라고 하는데 난전을 금지할 권리를 말한다. 금난전권은 나라에서 시전에게 준 권리 였다.시전상인 들은 금난전권을 가지는 특권을 가지는 대신 시전이 궁궐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외국에 선물로 보내는 물건 등을 바치는 대가로 금난전권을 주었다. 조선전기에는 시전에게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여 한 시전에서 한 가지 물품을 독점적·전문적으로 판매하다가 금난전권은 조선후기 인조15년에 시전에 부여했다..
청과의 전쟁에서 패한 결과로 조선 임금이 당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에 대하여 알아보자. 조선시대 북쪽에 사는 만주족을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했다.청나라는 만주에서 일어난 만주족이 세운날라이다.만주족은 다른말로 ‘여진족’이라고 하는데 나라를 처음 세울 때 후금이라고 불리었다가 나중에 ‘청’이라고 바뀌었다.삼전도의 굴욕은 청의 침입으로 인한 정묘년의 정묘호란과 병자년의 병자호란으로 인한 7년간의 청과의 전쟁에서 조선이 패하여 인조가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태종에게 항복한 사건을 말한다.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추운 겨울날 소현세자와 신하500명을 데리고 남한산성 문을 나섰다. 청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송파 삼전나루에 이르니 청나라 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나라 황제는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