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론을 바탕으로 하는 항일의병운동과 주기론을 바탕으로 북학파의 사상과 사회진화론,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문명개화론을 관련이 있는 애국계몽운동을 비교해 보자. 항일 의병운동은 을사조약 전부터 일어났다.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시해당하고 또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선포되자 의병운동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처음에 의병을 일으킨건 양반 유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성리학을 수호하고 사교를 배척하였다. 양반유생들은 부모에게 받은 것은 털 끝 하나라도 다쳐선 안된다는 성리학의 가르침 때문에 소중한 상투를 자르는건 곧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면서 단발을 강요하는 일본과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항일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의병운동이 활기를 띤 건 1907년 일본이 군대를 해산하는 명령을 내려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면..
조선시대 한양에는 시전이라고 하는 특별한 가게 들이 있었는데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직접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전에게 넘겨야 했다. 시전을 무시하고 직접 손님에게 물건을 팔면 ‘난전’이라 하여 시전상인에게 물건을 빼앗기고 벌을 받거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시전이 가진 이런 특별한 권리를 ‘금난전권“이라고 하는데 난전을 금지할 권리를 말한다. 금난전권은 나라에서 시전에게 준 권리 였다.시전상인 들은 금난전권을 가지는 특권을 가지는 대신 시전이 궁궐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외국에 선물로 보내는 물건 등을 바치는 대가로 금난전권을 주었다. 조선전기에는 시전에게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여 한 시전에서 한 가지 물품을 독점적·전문적으로 판매하다가 금난전권은 조선후기 인조15년에 시전에 부여했다..
청과의 전쟁에서 패한 결과로 조선 임금이 당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에 대하여 알아보자. 조선시대 북쪽에 사는 만주족을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했다.청나라는 만주에서 일어난 만주족이 세운날라이다.만주족은 다른말로 ‘여진족’이라고 하는데 나라를 처음 세울 때 후금이라고 불리었다가 나중에 ‘청’이라고 바뀌었다.삼전도의 굴욕은 청의 침입으로 인한 정묘년의 정묘호란과 병자년의 병자호란으로 인한 7년간의 청과의 전쟁에서 조선이 패하여 인조가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태종에게 항복한 사건을 말한다.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추운 겨울날 소현세자와 신하500명을 데리고 남한산성 문을 나섰다. 청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송파 삼전나루에 이르니 청나라 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나라 황제는 단..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은 요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 300년 전인 조선 숙종 때 당시 일본은 독도는 물론 울릉도까지도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 영토 논쟁의 한 가운데 있던 어부 안용복에 대하여 알아보고 독도 관련 우리나라의 과거 기록에 대하여 알아보자. 1693년 봄 다른 어부들과 함께 멀리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나간 안용복은 고향이 동래이어서일본말을 잘했다.당시 동래에는 일본과 무역교류를 하기 위해 설치한 왜관이 있어서 일본말을 배울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던 안용복은 일본어부 들과 맞닥뜨렸다.일본어부들은 허락없이 고기 잡이를 했다면서 일본의 오끼 섬으로 끌려 갔다. 이에 안용복은 “내가 내나라 땅에 마음대로 다니는데 어찌하여 붙들어 왔느냐?”라고 거세게 항의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