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던 나라가 바로 신라인데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신라에는 여왕들이 있었는데 선덕,진덕,진성 여왕들이다.여자가 나라를 다스린 경우는 고려와 조선에도 여러 번 있었는데 왕의 나이가 어려 정사를 볼수 없거나 뭔가 특별한 이유로 왕 노릇을 할 수 없을 때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가 잠시 정치를 대신하는 ‘수렴청정’이 있었다.수렴청정이란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본다는 뜻으로 여자인 대비가 남자 신하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로 생각해서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보았다.신라에만 여왕들이 있었던 것은 신분제도인 골품제와 관련이 깊다.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인데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성골로 왕위를 이을 사람은 선덕여왕 뿐이었다.선덕여왕은 성은 김씨로 아버..
신라에는 통일 전부터 골품제도라는 독특한 신분제도가 있었다.이 제도는 사람을 골과 두품으로 나누어 신분을 정해 놓은 것인데 신라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부모의 신분을 물려 받았다. 물론 신분제도는 고구려 백제에도 있었지만 신라의 골품제도만큼 일상 생활까지 시시콜콜 간섭한 경우는 없었다. 골품제도는 성골과 진골이라는 ‘골’신분과 6두품부터 1두품까지 여섯 등급의 ‘두품’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두품은 6두품이 가장 높고 숫자가 낮아 질수록 신분이 낮아져 1두품이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른뒤에 1두품에서 3두품까지는 평민과 똑같이 취급되어 성골,진골,6두품,5두품,4두품,평민으로 신라인의 골품제가 완성되었다. 진골과 성골은 왕족이기 때문에 이들은 오를 수 있는 벼슬에 제한이 없었다.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둘 다 고려 때 쓰여진 역사책인데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삼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은 〈삼국사기〉는 오늘날 남아 있는 역사책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없는 단군이야기를 실려 있는 역사책으로 둘 다 고려 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역사책은 누가,어떤 생각으로 썼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데 이를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사관은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매우 관계가 깊다. 그래서 역사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누가 썼는지 그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살았으며 어떤 사관을 가졌는지 또 어떤 이유에서 그 책을 썼는지를 알고 읽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삼국사기의 유학자 김부식과 삼국유사의 스님 ..
중국이 주인이던 당나라가 멸망한 뒤 만주의 거란과 여진은 서로 중국을 차지 하려고 호시탐탐 놀고 있었다.그런데 중국에 새로 등장한 송나라는 거란,여진을 경계하면서 고려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였고 고려는 어느 한쪽과 일방적으로 친한 관계를 맺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나라의 이익을 구하려고 노력했다.993년 일어난 거란의 1차 침입 때 고려는 서희의 활약으로 큰 싸움 없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강동6주를 확보하는 외교적 담판을 이끌어 냈다.거란이 침입했을 때 거란군의 총사령관은 거란 왕의 사위인 소손녕이었다.“우리 군사 80만이 도착했다.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기필코 섬멸해 버리고 말테니 고려의 왕과 사신들은 빨리 항복하라”라고 소손녕이 말하였다.이에 놀란 고려 조정은 서경(지금의 평양)..